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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농아인농구협회 박종기 회장 "이제부터가 시작, 한국팀 실력향상에 만전 기하겠다"
이영빈(고등부 09회)
  • 2013년 04월 13일
  • 조회 419

대한농아인농구협회 박종기 회장 "이제부터가 시작, 한국팀 실력향상에 만전 기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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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대화가 있어야 팀워크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소 불편하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과 수화는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성남 국군체육부대에서 5월 28일부터 5일간 열렸던 제7회 아시아태평양농아인경기대회에 출전한 한국대표팀의 이야기다. 공식 국제대회 경험이 처음이었던 한국은 신장과 기량 면에서 큰 차이를 실감하며 전패로 대회를 마쳤다.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자국에서 열렸음에도 불구, 오히려 해외팀보다도 관심과 지원이 부족했던 그들이었지만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는 데서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대회기간 내내 배우겠다는 진지한 눈빛으로 코트를 주시한 대한농아인농구협회 박종기 회장의 마음도 같았다.

대한농아인농구협회는 언제 만들어졌는지요?
지난 2007년 6월 22~30일에 중국 광저우에서 제2회 세계농아인농구선수권 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대회는 4년마다 열리는 대회로, 세계의 우수한 선수들이 기량을 겨루는 아주 큰 대회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농아인농구협회 결성 같은 건 꿈도 못 꿀 때였습니다. 저는 컴퓨터를 통해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에서 훌륭한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 동영상을 보고 많이 부러웠습니다. 그 대회를 보면서 농구를 사랑하고 농구 선수들을 육성할 수 있는 단체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2008년 11월 16일에 미약하지만, 한국농아인농구연합회(가칭)를 시작하였고, 그 후 2009년 5월 23일에 공식적으로 대한농아인농구협회가 창립되었습니다. 본 협회는 대한농아인체육연맹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올 해 2012년 1월에 국제농아인농구연맹(DIBF) 회원국으로 가입되었습니다.

현재 협회 구성은 어떻게 되어 있나요?
본 협회 사무국은 경기도 성남에 있습니다. 협회 구성으로는 회장인 저를 비롯해서 부회장, 감사, 이사, 사무국장, 그리고 무급 직원 몇 명이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환경이 열악하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제7회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대회에 출전한 한국 국가대표팀을 비롯해 선수들의 활동 및 훈련 현황은 어떻습니까?
창립 당시는 정말 준비된 것이 없었습니다. 단체가 작고, 외부 지원이나 후원도 미미하다보니 활동도 활발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행사나 경기대회가 있을 때 대한장애인농구협회에 지원요청을 하지만, 간헐적이고 지원금이 많이 부족해서 선수들에게 전폭적인 도움을 줄 수 없어 늘 미안한 마음입니다. 이번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대회를 앞두고도 충분한 훈련기간과 좋은 훈련 장소를 마련해 주지 못했습니다. 선수 대부분이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 주말에만 모여서 훈련을 했습니다. 경기 날짜를 코앞에 두고 안양 만안 청소년수련관에서 일요일마다 모여 겨우 7번 정도 훈련을 하고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앞으로는 점차 지원과 관심이 확대되고 나아지리라 기대합니다.

회장님께서는 어떻게 해서 농구와 연을 맺으셨는지요?
저는 학창시절부터 농구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국립서울농학교에 다녔는데 농구부가 따로 없어서 특별활동 시간에 농구를 했습니다. 정식으로 선수생활을 한 적은 없습니다. 졸업 후에 사회에 나와서도 농구를 하고 싶어서 서울 지역 농학교(서울농학교, 삼성학교, 애화학교, 구화학교) 동창들과 모여 가끔 친선경기를 하기도 하고, 또 모교 동창 선후배들이 모여 농구시합을 갖기도 합니다.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사실 한국의 농인 선수들이 공식적인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대회의 농구경기에 참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무척 자랑스럽지만, 아직 실력이나 운영적인 면에서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저나 선수들, 운영위원들도 이번 대회에 참가한 여러 나라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대만, 일본, 호주팀은 모든 면에서 탁월했습니다. 앞으로 저희들도 좀 더 전문성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대회는 선수들의 훈련 방법이나 경기 전략, 농구협회의 발전 방향 등을 새롭게 모색하는 유익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대회 개최에 있어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다면?
이번 대회를 위해 정부의 지원 뿐 아니라 대한농구협회, 국민생활농구협회, 한국프로농구연맹, 대한장애인농구협회 등의 후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지원이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 대회라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협회 운영과 선수 양성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필요한 만큼의 예산이 공급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협회 운영에 있어 가장 어려운 점은?
거의 모든 장애인 단체나 농아인 단체가 예산 때문에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저희 대한농아인농구협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사무실 운영, 전담 코치나 감독, 훈련할 전용 구장 등 아직은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농인들이 먼저 본 협회에 관심과 이해를 갖도록 충분히 알리지 못한 저희의 책임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뭔가 다 되리라는 욕심보다는 앞으로 작은 것이라도 하나씩 이루어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협회의 계획이 있다면?
협회의 최우선 계획은 현재 뛰고 있는 선수들의 기량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방안과 대책을 수립하는 데 있습니다.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서 앞으로 세계농아인올림픽이나 세계농아인농구선수권대회에 농아인 농구 선수들을 출전시키려고 합니다. 또한 전국 농아인학교의 농구부, 특별활동이나 방과후 농구교실 등을 통해 청소년 농구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해 나가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세계농아인청소년 농구선수권대회, 세계농아인청소년 농구캠프 등에 참가하여 재능을 빛낼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그리고 올 해 12월 중, 홍콩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농아인농구연맹 창립 총회에도 참석할 계획입니다.

박종기 회장은…
1968년 11월 6일 강원도 양양군 출신인 박종기 회장은 국립 서울농학교(고등부)를 졸업하고, 청주성서신학원을 수료했다. 현재 국제농아인농구연맹 정회원으로서 대한농아인농구협회를 이끌고 있으며,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농구연맹 창립추진 위원장, 경기도 농아인 협회 이사, 성남시수화통역센터 운영위원 등으로 다양한 직책을 맡고 있다. 또 수화교실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 REVIEW | 제7회 아태 농아인 경기대회
이번 아태농아인대회는 2000년 대만에서 제6회 대회가 열리고 무려 12년만에 열린 대회다. 30개국에서 2,500명이 참가했지만 농구 종목에는 4팀(대만, 일본, 호주, 한국)이 출전했다. 한 팀이 더 있었지만 대회 직전에 기권했다. 이 대회는 세계대회 티켓 3장이 걸려 있었다. 풀-리그로 치러진 대회에서 대만은 6월 1일 최종전(1~2위전)에서 일본을 72-65로 이기면서 우승했다.
호주도 3~4위전에서 한국에게 승리(88-31)하며 마지막 티켓을 손에 쥐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국가들 모두 복지 시설 및 저변이 상당히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그만큼 훈련 여건도 좋았고 실력이나 팀워크에서도 월등했다. 특히 1년 넘게 대회를 준비했던 대만의 수비 조직력은 현장의 농구인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고, 응원단을 대동한 호주도 코트 안팎에서 호흡이 잘 맞았다.
한국은 신장 및 개인 기술에 있어 한계를 드러냈다. 상대가 풀코트 프레스로 붙자 하프라인 넘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워낙 호주 선수들의 덩치가 좋다보니 부딪쳐 넘어지는 것은 예삿일이고, 부상 위험도 종종 노출됐다. 그럼에도 불구, 선수단은 마지막까지 수비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후반에 이를수록 상대 실책을 끌어내고, 리바운드 단속도 더 잘 됐다. 결과가 뒤집힐 정도의 분투는 아니었지만,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첫 걸음을 내딛었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표팀을 맡은 이형주 감독은 "성적을 떠나 힘든 상황에서 끝까지 열심히 해준 선수들을 보니 자랑스럽고 뿌듯했다"며 대회를 평가했다.

# 대표팀 이끈 이형주 감독·김준성 코치
이번 아시아·태평양 농아인 경기대회는 자원봉사단의 도움 없이는 결코 성공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다. 농구 종목에서도 수화 통역, 경기 지원 등 자원봉사단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국가대표를 이끄는 벤치도 그 중 하나였다.
국가대표 출신 한기범 씨와 함께 한기범농구교실을 운영중인 이형주 감독, 김태환 전 창원 LG 감독의 아들인 김준성 코치는 대표팀 코칭스태프를 자청, 어려운 여건 속에서 선수단과 호흡을 맞춰갔다. "우연한 기회에 농구를 가르쳐준 적이 있는데, 그때를 기억하시고 선수들이 다시 찾아주셨다"는 이 감독은 "다들 생업이 있다보니 많은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열심히 해줬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이 감독은 애초 프로농구 전문 지도자 출신을 코치로 초빙하고자 했지만, 가르친다고 통할 수준이 못 됐다. 결국 기본기부터 하나하나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경력도 짧고 타국 선수들과의 대회도 처음이다 보니 경기 전개도 힘들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김준성 코치가 중간에서 큰 힘을 보탰다. 대회를 치르면서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위경련으로 병원까지 다녀왔다는 이 감독은 열악한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실제로 대다수가 생업에 따로 종사하고 있는 한국대표팀은 그야말로 부족한 환경에서 대회를 준비했다. 정부 지원금으로 훈련한 기간은 겨우 1주일 남짓. 대부분의 장비는 서로 사비를 털어 마련했다. 연습용 공인구도 대회가 끝난 뒤 반납했다.
이 감독은 "지원이 없기 때문에 대표팀이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선수들에게는 '이번 기회를 계기로 사비를 털어서라도 개인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는데, 농구에 절박하게 매달릴 수 없는 그런 현실도 너무 안타까웠다"고 소감을 전했다.


2012-07-24 글, 사진 손대범 기자 점프볼| 기사입력 2012-07-2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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